세계 2위 무색한 'K-마이스'…저가경쟁에 기업 수익은 '마이너스'

입력 2017-02-02 17:39  

'가격 후려치기·과잉 지원'으로 멍드는 마이스 산업

입찰경쟁, 콘텐츠보다 가격
업체간 수주경쟁 치열해지며 "무조건 따고 보자" 저가 입찰
전체 수익률 1~2%도 안돼…투자는커녕 자금압박에 줄도산

지역선 퍼주기식 '과잉 지원'
마이스 육성 나선 지자체들, 너도나도 행사 유치 매달리며
'지역분담금' 경쟁적으로 지원



[ 이선우 기자 ] 오는 6월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기구 연차총회 운영대행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국제회의전문기획사(PCO) A사는 재무 및 기술(프로그램)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도 막판 가격경쟁에서 밀려 수주에 실패했다. 행사를 수주한 B사와의 점수 차는 단 0.005점차. 프레젠테이션 등 기술평가에서 A사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B사는 입찰 공고가(50억5000만원)의 80% 금액을 써내는 이른바 저가 입찰로 90% 중반 가격을 써낸 A사를 앞질렀다. 전체 예산의 10% 내외 수준에서 책정하는 일반관리비와 대행수수료 등 기업 이윤을 포기하고 무조건 행사만 따고 보자는 ‘가격 후려치기’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PCO인 인터컴의 최태영 대표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 입찰경쟁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콘텐츠나 운영능력보다 가격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저가 입찰의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국제협회연합(UIA)이 발표한 국제회의 개최 순위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891건)에 오른 한국의 마이스(MICE: 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이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저가경쟁’ ‘과잉지원’으로 시름하고 있다.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유치 노력에 힘입어 해마다 국제회의, 전시회 등 행사는 늘고 있지만 정작 돈을 버는 곳은 없어 마이스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바닥까지 떨어진 수익률 탓에 신규사업 발굴, 직원복지 향상 등 투자는 고사하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과 같은 위기상황에 대한 업계의 대처능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이스업계의 수익성 악화는 저가 출혈경쟁이 원인이다.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마이스 기업들이 인건비 등 회사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경쟁, 시장건전성 등은 외면한 채 당장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의 저가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김응수 한국마이스협회장은 “업체 간 수주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체 수익률이 바닥 수준인 1~2%로 떨어진 지 오래”라며 “저가 행사 수주의 피해가 2차, 3차 협력업체에 그대로 전가되면서 업계 전체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혈경쟁으로 인한 자금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예 문을 닫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메이저 업체인 BMD가 최종 부도 처리된 것을 비롯해 지난 연말에만 10여개 지방 기업이 줄도산했다. PCO 베니카의 박재성 사장은 “수익성 악화에 최근 김영란법 시행과 국정농단 사태로 기관과 기업 주최 행사가 줄어들면서 업계 전체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역에서는 과잉지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광역·기초 지자체가 앞다퉈 마이스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퍼주기식 과잉지원이 보란듯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제협회 본부나 학술대회 조직위원회 등에서는 유치 실적이 필요한 지자체의 입장을 악용해 지역 간 지원 경쟁을 부추기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박진혁 서울관광마케팅 컨벤션뷰로 단장은 “당초 국제기구나 협회에서 행사를 유치해 놓고도 지역 분담금 문제로 갈등을 빚어 개최지가 중간에 바뀔 때도 있다”며 “공식적으로 개최지를 다양한 기준에 따라 평가해 선정한다고 하지만 실제 결과를 놓고 보면 가장 많은 분담금을 제시한 지역에서 행사가 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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